NHK ETV特集 海峡を越えた歌姫 在日コリアン声楽家の20年
7月10日(土)のETV特集「海峡を越えた歌姫~在日コリアン声楽家の20年」は、韓国、北朝鮮、日本、3つの国のはざ間で翻弄(ほんろう)される在日2世のオペラ歌手の20年を追ったもので、彼女の境遇や活動を通して南北問題や日韓の意識の違いが描かれ感動的だった。( 平成16年7月 NHK 放送番組審議会 中央 議事録より )
日本と韓国は、来年、国交正常化から40周年を迎える。長い時間を費やしながらも、日韓の文化交流は着実に深化している。一方、北朝鮮と日本は、2年前のピョンヤン宣言以降も拉致問題など解決すべき問題を抱えたままだ。
在日コリアン2世の女性声楽家チョン・ウォルソン(田月仙)さん(46歳)は、分断された「祖国」と日本の間に横たわる複雑な国際政治にほんろうされながらも、20年にわたり一流の声楽家として活躍を続けてきた。日本や祖国朝鮮半島の歌をそれぞれの言語で歌い続けている。
日本で生まれたウォルソンさんは、父親の事業の失敗や音大の受験資格の壁(在日という理由で願書を受け付けてもらえなかった)を乗り越え、1983年に声楽家としてデビュー。在日で唯一のオペラ歌手(二期会会員)として高い評価を得ることに成功した。
85年、ウォルソンさんは北朝鮮に招かれ、金日成国家主席(当時)の前でアリアを歌った。訪朝の動機のひとつが、59年に始まった帰還事業で北朝鮮に渡っていた兄たちに会うことだった。4人の兄は強制収容所に入れられ、そのうち一人が死亡していた。
94年、今度は韓国に招かれ、オペラ「カルメン」の主役を務めた。98年には、東京都の親善大使としてソウルで日本の歌を歌うことになる。両親の生まれ故郷は韓国にある。ウォルソンさんは日韓の明るい未来を願って「夜明けの歌」を歌いたいと申し出た。しかし韓国政府は童謡以外の日本の大衆歌謡を歌うことを許さなかった。
ウォルソンさんはその後、日本の大衆歌謡に警戒感を抱く韓国社会の深層を知りたいと、韓国中を旅しながら、日本統治下時代の歌を探して回った。そして見つけた古いレコード「息子の血書」。“お母さん、敵弾の下、立派に戦い死んで帰ります”と歌うその歌は朝鮮半島の若者を日本の戦争に徴用するために、朝鮮半島の人々自身の手によって作られ歌われた曲だった。
ウォルソンさんは、戦後作られた祖国統一を願う歌にも出会う。「高麗山わが愛」。
“南であれ北であれ、いずこに住もうとみな同じ兄弟ではないか”と歌うこの歌は朝鮮戦争中アメリカに逃れた在米コリアンの男性が作った曲で、ウォルソンさんは日本でも韓国でもコンサートなどで歌い続けてきた。しかし「日本人拉致事件」以降、「被害者と家族の気持ちを考えると歌えない・・・」と、一時、歌うのをためらわざるを得なくなる。
日本と朝鮮半島の海峡を越え、歌い続けるウォルソンさん。自分の歌は、歴史や国家の枠組みにほんろうされ、犠牲になったすべての人々の魂にささげたいと、彼女は言う。番組は、韓国・北朝鮮・日本という三つの国のはざまで生きる、チョン・ウォルソンさんの半生を通じて、東アジアの激動の現代史を描いてゆく。
(韓国の新聞で紹介された記事)
NHK '국경을 넘는 가희' 전월선 방영
在日한국인성악가 전월선의 20년
내용은 재일한국인 2세의 성악가전월선의 반생을 금년 개최한 20주년기념 독창회의노래를 소개하면서 한일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는 90분간의다큐멘타리 프로입니다.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대중문 화가 피워올린 일본내 '한류' 열풍으로 한 재일동포(재일코리안) 예술가의 삶이 거듭 조명되고 있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시청자들의요청에 힘입어 재일동포 2세 소프라노 가수로 한국과 일본, 북한을 오가며 '국경을 넘는 가희(歌姬)'로 활동중인 전월선(田月仙.46)씨의 인생과 예술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오는 31일 새벽 재방영하기 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목은 '해협을 넘나드는 가희(歌姬)-재일 코리안 성악가의 20년' 로 총 90분짜리. 재일동포 개인의 다큐멘터리가 재방영되는 것은 NHK 최초의 일이다.
NHK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전화에서 "이 기록물이 지난 10일 방송을 탄 후 '전씨의 인생역정에 감동했다' '한반도와 일본을 둘러싼 과거사에 눈뜨게 됐다'며 재방영을 요청하는 e메일과 팩스가 쇄도했다"며 "'한류'의 열풍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 유일의 재일 코리안 성악가로 정상에 오른 전씨의 굴곡많았던 인생과 성공 스토리를 분단된 한반도와 한.일, 북.일 관계사의 맥락 위에서 실감나게 제작했다.
다큐멘터리는 전씨가 올초 도쿄에서 데뷔 20주년 콘서트 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남 진주에서 학도병으로 일본에 끌려온 부친과 동향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전씨는 조총련계 초.중.고교를 다니며 조선무용과 노래를 익히면서 음악인생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총련계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번번이 대학입학을 거절당하다 1983년 일본의 대표적 오페라단인 '니키타이(二期會)'에 입단했다. 가창력을 인정받아 '나비부인' '피가로의 결혼' 등 각종 국제공연에서 활약, 일본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프리마돈나로 떠올랐다.
전씨는 1985년 평양 음악제에 초청, 고(故) 김일성(金日成) 주석 앞에서 아리아를 불렀다. 방북의 큰 이유는 '귀환사업'으로 북한으로 건너간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씨는 4명의 형제가 강제수용소에 끌려갔고 1명이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 국적으로 바꾼 전씨는 1994년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 오페라 '카르멘'의 주역으로 남북한 동시공연을 실현시켰다. 당시 그는 한.일 양국의 밝은 미래를 기원한다는 취지의 일본노래 '새벽의 노래'를 부르고자 했지만 한국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내 반일감정을 몸으로 이해하고자 한국여행에 나섰다. 여로에서 그는 조선반도의 젊은이들이 일제징용에 앞서 만들어 불렀다는 '자식의 혈서'를 비롯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가요 등을 여러편 발굴, 각종 공연의 레퍼토리로 빼놓지 않았다.
2002년 한.일 공동월드컵 폐막 때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주최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환영만찬에선 한국의 '아리랑'과 일본의 '후루사토(故鄕)'를 나란히 불렀다. 또 한.일 합작 오페라 '춘향'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전씨는 민단계 한국인과 조총련계 조선인의 편가르기가 싫어 '재일 코리안'을자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