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의 아리아, 전월선 30년의 기록
■ 방송일시 : 2013. 4. 7 (일) 밤 8시 KBS 1TV ■ 연 출 : 오타 신이치(Ota Shinichi)
한국, 북한, 일본 3국의 정상 앞에서 노래한 유일한 ‘재일동포 2세’ 오페라 가수 전월선! 데뷔 후 30년 동안 꾸준히 남과 북, 일본을 오가며 평화를 노래한 ‘해협을 넘나드는 가희(歌姬)’ 전월선의 30년 인생을 통해 이념을 초월한 한반도, 화해와 상생의 한일관계를 모색해본다.
■ 나는 ‘재일동포 2세’ 오페라 가수입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에 구태여 민족에 대한 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조국애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채 나라는 하나라고 하는 것을 노래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쁩니다. -전월선 씨 인터뷰 中
‘재일동포 2세’ 오페라 가수 전월선. 그녀는 어릴 적 민족학교(조총련계)에서 음악과 무용을 배우면서 음악인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조선학교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국립음악대는 전월선의 입학을 거부하는데...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마침내 1983년 일본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 최고의 재일동포 프리마돈나로 성공하기까지, 그녀의 가슴 시린 이야기를 들어본다.
■ 나에겐 네 명의 오빠가 있었습니다
1959년부터 84년까지 추진된 북송사업. 9만 여명의 재일동포들이 ‘조국을 향한다’는 명목 아래 북한 땅으로 향한다. 전월선의 오빠 4명도 북한행 배에 몸을 실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얼마 후 오빠들은 간첩누명을 쓰고 강제수용소에 수감된다. 20여 년이 훌쩍 흘렀다. 1985년 평양에서 온 세계음악제 초대장, 전월선은 김일성 주석 앞에서 노래를 부른 뒤 오빠들과 만날 수 있었는데... 잠깐의 재회, 그 후 다시는 오빠들을 만날 수 없었다.
■ 남, 북 모두 그리운 형제들입니다
남이나 북이나 그 어디 살아도 다 같이 정다운 형제들 아니런가. - 고려산천 내 사랑 가사 中-
1994년 서울에서 오페라 ‘카르멘’의 주연을 시작으로 전월선은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아진다. 당시 길에서 구입한 카세트테이프, 그 속에 들어있던 ‘고려산천 내 사랑’이라는 노래는 그녀의 음악인생을 재탄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결국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나와 같은 예술가조차 분단의 영향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평화를 호소하는 이 노래를 교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 노래를 불러왔습니다. - 전월선 씨 인터뷰 中
■ 내가 ‘평화’를 노래할 수 있을까요?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로 한국과 일본은 축제분위기였다.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총서기가 일본인의 납치를 공식 인정, 일본 정부와 여론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으로 들끓었다. 그 즈음 열린 리사이틀에 일본인 납치 피해자 요코타
정말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왔고 그것을 일본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응원도 해줬는데 예전 같은 마음으로 일본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전월선 씨 인터뷰 中
■ 그러나 나는 다시 부릅니다
도망치듯 일본을 떠나, 유럽 공연에 몰두하던 전월선에게 어머니의 병환 소식이 들려왔다. 극도로 쇄약해진 어머니는 결국 일 년 후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에게 녹음테이프 하나를 남겼다. 어머니가 딸에게 남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전월선은 다시 ‘평화’를 노래할 힘을 얻는다.
어머니가 옛날부터 말씀하셨던 건 모든 괴로움이나 슬픔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는 그것을 강하게 뇌리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통일의 날까지 계속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 전월선 씨 인터뷰 中
2013년 4월 7일 밤 8시, 가슴 따뜻한 ‘해협의 아리아’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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