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칸트와 전통 '창'의 융합
데뷔로부터 30주년 전월선씨(田月仙)씨
재일동포2세 소프라노 가수
'조국' 한국에서 일본 노래를 - '고향' 일본에서 한국 노래를
일본에 한국인 성악가의 존재가 아직 드물었던 1983년 도쿄에서 데뷔한 재일동포 2세 소프라노 가수 전월선(田月仙)씨.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면서 '고향' 일본에서 한국 노래를, '조국' 한국에서는 일본 노래를 소개해 왔다. 31일 오사카와 10월12일 도쿄에서 데뷔 30주년을 기념한 리사이틀을 연다.
서양 음악을 통해 배운 발성법을 기초로 한국의 전통 예능 판소리 '창'과의 융합을 시도해 폭넓은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월선씨만의 색깔이다.
1983년 'All about Chon Wolson'이라는 제목의 첫 라시이틀에서는 일본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가곡에 혼을 불어넣어 청중에 충격을 안겼다. 그 가운데 민요를 기초로 클래식 음악을 더한 '정조 아리랑'은 청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음악대학 토호가쿠인 예술과를 졸업하고 연구과를 수료했다. 곧바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의 대표적인 성악가 집단에 입단했다. 일본의 오페라 가수가 노래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가운데 전씨는 온리원을 꿈꾸고 기공, 태극권, 프라멩코 등 무엇이던지 도전해 왔다. 이는 그후 무대공연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첫 무대는 1994년.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 정도 600년 기념 오페라 '카르멘'에서 주역을 맡아 언론으로부터 '우리나라 가수에 없는 정열적인 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후 세종문화회관에서도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 '춘향전'의 춘향역을 맡았다. 이 때 어렸을 때부터 배운 전통 무용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에 앞서 1985년에는 평양의 노래 극장 무대에 섰다. 또 일본의 대중문화가 개방된 1998년에는 도쿄와 서울의 우호도시 10주년 친선대사로 서울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동요 '아카톤보' 등을 불렀다. 그러나 한일의 밝은 미래를 바라며 선곡한 일본의 대중가요 '새벽 노래'는 시기 상조라며 허락받지 못했다.
해협을 끼고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운만이 아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어렸을 때부터의 강한 뜻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0대의 10년간은 국제무대에서 주역을 맡기 위해 가성을 달련하는 전문적인 보이스 트레이닝에 임했다. 그 결과 50대인 지금도 세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역을 맡아 전성기와 같은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도쿄도 타치카와시 출신. 유치원 때 피아노에 접해 음악가를 목표 삼게 된다.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 문제로 수험을 거부 당해 토호가쿠인 대학에서만 수험을 인정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기념 리사이틀 개최
리사이틀의 제목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산다'는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 '토스카' 가운데 저명한 아리아. 이 오페라는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서 죽은 오빠가 좋아했다고 한다.
월선씨 자신도 불같은 가수, 토스카가 사랑과 음모 사이에서 펼치는 파라만장한 인생과 자신의 30년을 중첩시켰다.
전반은 월선씨가 라이프워크로 삼아 온 한일 가곡집 등으로 후반은 오페라 명장면집과 명곡집으로 구성돼 있다.
'한오백년'은 폐품을 모으고 리어커를 끌면서 본인을 키워 준 부모님을 비롯한 재일 1세의 고난을 노래했다. '형을 그린다'는 북한에 넘어 간 오빠들에게 바치는 노래다. 정조 아리랑은 벨칸트를 기초로 한국 전통 창 기법으로 노래한다. '고려산천 내 사랑'은 '남이든 북이든 어디서 살던 같은 형제가 아닌가'라는 내용의 월선씨 대표곡이다.
공연은 작곡가 및 피아니스트 아사오카 마키코(朝岡真木子)씨,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SONGIL(송일, 도쿄 공연), 테너 임수선(林寿宣, 칸사이 2기회 회원, 오사카 공연)씨 외. 18시 개연(17시30분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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